의외처럼 보이는 선택, 그러나 매우 계산된 행보
2025년 5월, 삼성전자가 독일의 냉난방 공조 전문 기업 플랙트그룹(FläktGroup)을 2조 4천억 원에 인수한다는 발표는 한동안 주요 경제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표면적으로는 가전이나 반도체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이 인수 건에 대해 일부에서는 '비핵심 사업 확장'이라며 고개를 갸웃했지만, 내게는 오히려 이 선택이 삼성전자의 미래 전략을 여실히 드러내는 사건처럼 느껴졌다.
나는 블로그 콘텐츠를 분석할 때 '의외성' 뒤에 숨겨진 전략적 의도를 포착하는 걸 즐긴다. 이번 플랙트 인수도 겉보기엔 낯선 이름이지만, AI 인프라 산업, ESG 요구, 냉각 기술에 대한 시장 수요까지 삼성이 얼마나 넓은 시야를 갖고 움직이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플랙트는 누구인가, 왜 필요한가?
플랙트는 1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유럽 최대 HVAC 기업이다. 병원, 미술관, 데이터센터, 고층 건물 등 고정밀 환경을 요구하는 공간에 공조 시스템을 공급해왔고, 특히 액체 냉각(Liquid Cooling) 방식의 데이터센터 냉각 기술에서 업계 최상위권에 속한다.
오늘날 생성형 AI(Gen AI), LLM, 고성능 서버 등은 엄청난 전력을 소비하며 고온을 유발한다. 이러한 AI 인프라의 운영 안정성을 좌우하는 것이 바로 냉각 시스템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메타 등 글로벌 빅테크들이 수냉식 데이터센터를 전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 1위지만, AI 클라우드 인프라 시장에서는 인텔, 엔비디아와 같은 기업들에 밀리는 중이다. 플랙트 인수를 통해 삼성은 냉각 기술 기반의 인프라 주도권을 잡고, 향후 AI 반도체, 서버, 빌딩 솔루션까지 연계되는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의도가 있다. 이건 단순한 제조 기업이 아닌, 글로벌 인프라 솔루션 제공자로 변모하겠다는 선언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플랙트의 기술이 삼성의 빌딩통합제어 솔루션, 에너지 제어, 스마트시티 기술과 접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삼성은 도시 전체를 관리할 수 있는 인프라 플랫폼을 구상 중이다. 우리는 지금 냉각 회사 인수 하나가 아니라, 미래 도시를 디자인하는 거인의 발걸음을 보고 있는 셈이다.
시장 흐름과 산업적 맥락
HVAC 시장은 2024년 기준 약 610억 달러 규모로, 2030년까지 990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데이터센터 냉각 시장은 연평균 18% 이상 성장하여 2030년에는 441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반도체보다도 빠른 성장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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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조 시스템은 이제 단순한 건축 설비가 아니라, 고성능 디지털 인프라의 생명줄이 되었다. 지구온난화, 에너지 절감, ESG 요구가 강화되는 가운데, 플랙트의 고효율 저탄소 냉각 기술은 시대가 요구하는 솔루션이다.
탈(脫)제조 기업을 향한 시그널
삼성전자의 플랙트 인수는 단순한 기술 확보 차원이 아니다. 이는 제조 중심의 수직 계열화를 넘어, 도시 기반의 스마트 인프라 기업으로 탈바꿈하려는 방향성의 전환이다. 하만 인수로 커넥티드카 생태계를 준비했던 것처럼, 플랙트를 통해 AI 인프라 생태계의 근간을 설계하는 것이다.
나는 이번 인수를 보며, 삼성이라는 기업이 더 이상 반도체, 스마트폰, TV에 머물지 않겠다는 확고한 신호를 보냈다고 느꼈다. 디지털 시대의 전력, 냉각, 공간 제어라는 본질적 인프라를 장악하겠다는 선언. 이건 매우 계산된, 그러나 분명한 선택이다.
